The end.

"나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을 알고 싶어."


라고 A는 날개를 펄럭이며 중얼거렸다.

그는 자신의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 이 땅을 떠나고 싶었고 자신이 원하던 세계로 향하고 싶었다.

그러나 용기가 없던 그는 마음이 납처럼 무거웠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혼자 며칠 밤낮을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다할 해답을 얻지 못했다. 

결국 그는 더 이상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스스로 자신의 두 날개를 잘랐고,

꿈을 꿀 수 있는 뇌의 일정 부분을 불로 지져버렸다.

이후 그는 뇌가 마비가 되어 조금 바보가 되었으나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미처 다 지지지 못한 부분이 남아서 그에게 새로운 희망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진리로 도달할  길을 알고 싶습니다."

마침 혼자 걷고 있던 A가 말했다.

그러자 우연히 곁을 지나가던 B가 그 말을 듣고 말했다. "현자가 있는 집으로 가보시오."라고.

그래서 A는 B의 말대로 현자의 집을 방문했다.

그는 현자를 보고 B에게 했던 말과 똑같이 말하였다.

"나는 진리에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알고 싶습니다."



그러자 현자는 진리에 도달할때까지 자신의 집에 방문해도 좋다고 허락했다.


그래서 A는 꼬박꼬박 정해진 일자에 현자의 집에 방문했다.

그러나 A는 진리를 구하겠다던 처음의 말과 달리 그는 진리와 전혀 상관없는 말들을 하고 있었는데, 

실은 A는 진실에 관심을 기울일 수가 없었다. 그는 사실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진리를 구할 용기가 없었고,

그저 현자의 집에 찾아가는 것만으로 '언젠가' 막연히 진리를 알게 될 것이라고 위안을 삼고 있었다.


그는 자주 사소한 일들로  화가 나 있었고 누군가 자신의 분노를 정당하다고 말해주길 바랬으나

누구에게, 왜 화가 났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현자에게 원하는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현자는 그의 분노에 대해 탐구해보려고 했으나, A는 자신이 분노한 이유에 대해 부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A를 나무랐다. 

그래도 A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속에 그는 현자를 미워하는 마음을 키워갔다.
 
시간이 흘렀고, 자신이 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는 지점에 오면서 

A는 깊은 실망에 빠져 분개했다.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추구할 수 없고 달라진 점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절망과 무력감을 느꼈고,

이 분노는 그 자신과 더불어 현자에게 향하게 되었다.


그는 어느날 싼값에 수류탄을 구매했고 이를 들고 현자의 집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는 현자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를 던졌다.


그러나 수류탄은 언덕배기에 있는 현자의 집에 도달하지 못했고

중력을 거스르지 못하고 뒤로 굴러 A의 발치에 멈췄다.


그리고 수류탄은 A의 신발 앞코에 닿는 순간, 어김없이 터지고 말았다.


A의 몸은 산산조각이 났고, 죽기전 조금 숨이 붙어 있던 A를 보고 지나가던 행인이 물었다.

"어리석게도.......왜 이런일을 저질렀소. 그래봤자 다칠 것은 당신 자신이었을 텐데."


그제야 A는 자신이 왜 화가 났었는지 깨달았다.

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났었구나.

나를 위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 자신을 증오하고 파괴하고 싶었구나...






비로소 A는 고통속에서 마지막 미소를 지었다.




by 아비 | 2011/05/04 14:37 | writing | 트랙백 | 덧글(0)

The fall : 오디우스와 환상의 문 (스포일러 심함)

영화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실연을 당하고 영화 촬영중 무리하게 철도에서 뛰어내리는 씬을 찍다가 하반신이 마비된 스턴트맨 로이에서부터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은 로스엔젤레스의 한 병원이다.

로이와 같은 병원에 오렌지 농장에서 오렌지를 따던 중 사다리에서 낙상한 알렉산드리아가 치료를 받고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소중한 것이라며 도시락통만한 상자를 깁스한 손에 들고 다니는 귀엽고 씩씩하고 배려심 많은 여자아이다. 아이는 자신을 돌봐주는 예쁜 에블린 간호사에게 서툰 영어로 짧막한 편지를 쓴다. 철자법은 무시한 그 문자에서 그나마 해독 가능한 건 아래 문장 뿐이다..


Nerse Evilin I LUV YU


그녀가 창가에서 날린 쪽지는 로이의 침대로 떨어지고 그러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다.




알렉산드리아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다.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에게 “네 이름이 알렉산더 대왕의 이름에서 따온걸 아니?”라고 물으며 “알렉산더 대왕도 메시지를 찾고 있었어”라고 말하자, 벽에 비친 말의 형상을 이용해 금세 말을 타고 폐허가 된 건물들 사이를 배회하는 알렉산더 대왕을 상상한다. 그리고는 “왜 말에 타고 있었으면서도 그 건물에서 나오지 않았어요?”라고 로이에게 묻는다.

이를 통해 이야기는 로이가 하고 있지만 이제부터 시작될 이야기가 전적으로 로이의 일방적인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로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그녀의 상상 속에 심상화하며 나중에는 아예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 정도로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로이는 연인에게 배신당하고 하반신이 마비된 절망적인 상태이고 아무런 희망도 품지 못한다. 그는 그저 죽기를 바랄뿐이다. 그런 그가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모두 비극적일 뿐이다.

알렉산더 대왕이 받은 메시지의 첫 문장에 대한 이야기부터도.

"My load, all hope is lost."



이야기는 로이의 심리상태를 따라 흐른다. 로이는 엎질러진 커피가 헝겊에 스미는 것을 보면서 희생자의 피를 연상한다.




영화 일을 같이 하던 사람들인 로이에게 와서 이런저런 위로의 말들을 던지지만 그 어떤 말도 로이의 상심한 마음을 회복시키지 못한다.



로이의 이야기에는 다섯 명의 남자들이 나온다. 그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오디우스 왕에게 원한을 품고 그를 증오하며 죽이고 싶어 한다. 로이의 이야기속에서 오디우스는 절대적인 힘을 가지고 다섯 남자를 파괴하려는 all badness한 인물로 그려진다. 뒤에서 나오겠지만, 로이는 “그녀는 오디우스를 사랑한게 아니야, 그런척만한 거지”라며 우는 장면을 보면 오디우스는 사랑하는 연인과 남부러울 것 없이 행복한 시절을 보내는 상실, 절망, 무력감 등등과는 무관한 대상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리고 이 다섯 남자들은 모두 로이의 현재 심리상태를 여러 가지 변형된 형태로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



1. 노예출신 오타뱅가는 일하던 중 동생이 죽자 오디우스를 죽이겠다고 결심한다.

2. 인도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가 있었는데 오디우스가 아내를 납치해가고 결국 아내는 자살한다. (초반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모두 아름답고 선한 존재로 그려진다. 아직 그는 자신을 배신한 연인을 향한 분노감정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려면 연인이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3. 폭파전문가 루이지는 오디우스 왕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외면을 당하고 고립된다.

4. 영국인 생물학자 찰스다윈은 조수 또는 동료격인 부끄러움 타는 원숭이 월리스가 늘 함께 다닌다(이를 봐도 로이의 이야기가 얼마나 조잡하고 허접스러운지 알 수 있다. 아무리 멋모르는 애한테 들려준다고 막 갖다붙이는격). 그는 늘 새로운 것을 찾아다녔는데 그무렵 americana exotica라는 매우 희귀한 나비를 찾아다닌다. 그리고 어느날 오디어스가 그 나비의 반쪽 날개를 찰스 다윈에게 보내어 그의 원한을 산다. 나비의 반쪽 날개는 마치 찢겨진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다.

5. 마지막으로, 빨간 두건 남자는 자신의 형제를 오디우스 왕에게 잃는다.



영화의 영상미는 단연 최고다. 어느 한장면 한 장면 놓칠 수 없이 아름답다. 게다가 이 모든 것에 CG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영상은 수면제인줄 알고 과량복용한 설탕 위약을 먹고는 점차 의식이 흐려지는 로이의 정신상태에 따라 움직인다.




로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잠시 제쳐두고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알렉산드리아가 성체를 로이와 나눠먹는 장면이다. 알렉산드리아는 몰래 신부의 제의실로 들어가 신부가 사람들에게 성체를 나눠주고 그것을 사람들이 받아먹는 것을 보고는 성체를 가지고 나온다. 그리고는 해맑게 웃으며 이를 한입 베어물고는 그게 뭐냐는 로이의 물음에 그저 ‘food'라고 답하며 로이에게 나눠준다. 알렉산드리아에게는 그저 음식을 나눠 먹은 것밖에 안되지만, 로이는 알렉산드리아가 준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you're trying to save my soul? 이라고 묻는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는 영문을 모른채 그저 웃을 뿐이다. 로이가 아무리 네가 준 것이 성체고 그것이 영혼을 구해주는 것이라고 말해도 도대체 이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냐는 표정이다.



이 장면을 보면서 스킨스 시즌3에서 나오미와 나오미 엄마의 대화가 떠오른다. 나오미의 엄마는 꿈에 그리던 멋진 남자와 세계여행을 떠나려던 멋진 순간에 나오미를 임신하고 그로 인해 모든 계획들이 수포로 돌아가게 되어 얼마나 화가 났었는지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너를 낳은건 훨씬 멋진 일이었고 너로 인해 내 삶이 완성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덧붙이는 말이 중요한데,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를 만나면 반드시 소중하게 대해야 한다'는 주목할만한 말을 딸에게 해준다. 


로이는 우연히 알렉산드리아를 만났지만 알렉산드리아는 로이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치며 예상치 못하게 로이를 행복하게 하며 조금씩 희망을 불어넣고 있다. 그러나 로이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다. 그는 그저 대충 이야기를 둘러대며 아이를 이용해 몰핀을 과량 훔쳐와 자살하길 바랄 뿐이다.


어쨌든 이 씩씩한 소녀는 나름대로 밝고 희망찬 삶을 이루어나간다. 착한 할아버지가 알려준 대로 무서울 때는 magic words를 외치고

googly, googly, googly! pick off!

googly, googly, googly! go away!


아메리카나 이그조티카를 자신의 몸에 그려보기도 하면서,

어린 나이에 오렌지를 따는 일은 더 이상 하면 안된다는 의사의 조언을 가볍게 무시하며
영어를 못알아듣는 엄마에게는 다른 말로 둘러대면서.
죽은 할아버지의 틀니를 오렌지 껍질에 담아 묻으며 다음의 나무를 기다린다.




알렉산드리아가 다시 한번 낙상(FALL)하면서 영화는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게 된다.


점점 이야기에는 로이의 개인적인 얘기들이 노골적으로 뒤섞이고 개입된다. 그리고 여태 간접적으로 드러나던 로이의 상심한 마음, 분노는 이제 거침없이 분출되기 시작하고 이야기는 점차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로이는 반쪽짜리로는 살 수 없어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며 하나둘씩 이야기 속 인물들을 잔인하게 죽여나가고 사람들은 비참하게 죽어간다. 또한 생사를 앞다툰 상황에서 마치 마지막 구원이라도 되는 듯 나비를 쫓던 원숭이 월레스도 총에 맞아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다윈이 그렇게나 찾았다녔던 아메리카나 이그조티카 나비는 죽어가는 월레스의 손을 떠나 허망하게 사라진다.


그리고 월리스의 친구 찰스 다윈도 마지막으로 비겁함을 버리고 용기를 내어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렇게 로이 내면의 또 다른 로이들이 죽고 나서야 이야기의 핵심주제가 부상한다. 이제 오디우스는 그의 전 여자친구의 남자친구로 변해있다. 그리고 로이는 loser처럼 삶을 포기한다. 물이 겨우 허리높인데도 그는 일어서려고도 헤엄을 치려고도 하지 않고 그대로 날아오는 주먹을 맞으며 죽음을 기다린다. 마약중독자에 겁쟁이에 쓸모없는 놈이라고 스스로를 비하하며.


여기에는 알렉산드리아의 개인적인 갈등도 개입되고 있다. 아버지를 잃고 엄마와도 떨어져 지내는 알렉산드리아는 친절한 간호사 언니를 엄마처럼 여기며 따른다. 또한 로이를 아버지처럼 여기며 사랑한다. 이는 알렉산드리아가 참다 못해 이야기에 적극 개입하며 빨간두건의 딸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알렉산드리아는 사랑에 마지않던 간호사 언니가 의사와 깊은 관계라는 것을 알게되고 배신감을 느낀다. 그것은 전 여자친구에 대한 로이의 감정과 묘하게 겹쳐져 나중에는 이야기 속의 여자는 두 사람을 실망시키고 상심하게 한 대상으로 통합된다.


알렉산드리아는 어느새 현실과 이야기를 뛰어넘어 모든 것을 포기하려는 로이에게 "딸은 아버지를 사랑한다"며 아버지를 죽이지 말라고, 로이에게 죽지 말라고 울먹인다. 후반부에 훌쩍이는 로이와 그런 로이에게 자살하지 말라고, 삶의 희망의 끈을 놓지말라고 설득하는 알렉산드리아의 모습을 보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이야기의 치유력이 얼마나 놀라운지 새삼 깨닫게 된다. 로이는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내고 그 안에서 억눌린 감정을 해소하며 점차 회복된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는 계속해서 로이를 찾아와 이야기를 해줄 것을 독촉하며 은연중에 치료자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어쨌든, 두 사람은 각자의 삶으로 돌아간다. 알렉산드리아는 엄마와 오렌지 농장으로 돌아간다. 로이의 말대로 알렉산드리아는 아직 어리고 살 것이며 그녀의 앞날은 빛나는듯하다.



그리고 로이는 다시 스턴트맨으로 돌아간다.
떨어지고, 때리고, 어딘가를 기어오르며, 맞으며


계단에 올랐다가 내렸다가, 내렸다가 올랐다가를 반복하며

달리는 차를 붙잡고

떨어지고 가까스로 살아남고

가까스로 기차를 피하고

가까스로 비행기에 구출되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떨어지고,

자전거에서 뛰어내리고

밧줄에 매달려 떨어지고

맞고 떨어지고...



흑백 무성영화는 계속해서 이런 장면들만 편집되어 빠르게 돌아간다.
이 장면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묘하게 감동이 밀려온다.

마치 인생은 그렇게 계속 넘어지고 떨어지고 가까스로 살아남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것이지만,
그래도 희망은 있노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by 아비 | 2010/03/03 01:47 | 감상 및 정리 | 트랙백 | 덧글(0)

나쁜 대상관계들의 변천과정

아이는 나쁜 사람이 됨으로써 대상들 안에 있는 나쁨(badness)이라는 짐을 스스로 떠맡는다. 이러한 방법으로 대상들 안에 있는 나쁨을 정화시키고자 한다. 이 방법이 성공하는 만큼, 그는 좋은 대상 환경이 부여하는 안전감을 획득한다. 물론 대상들 안에 자리잡고 있는 나쁨을 떠맡는다는 것은 나쁜 대상들을 내재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재화된 나쁜 대상들 쪽으로 기우는 한, 아이는 내재화된 좋은 대상(즉, 초자아)의 관점에서 조건적으로(즉, 도덕적으로) 나쁜 아이가 되며, 내재화된 나쁜 대상들의 영향에 저항하는 한, 아이는 초자아의 관점에서 조건적으로(즉, 도덕적으로) 좋은 아이가 된다. 확실히 조건적으로 좋은 아이가 되는 것이 조건적으로 나쁜 아이가 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조건적으로 좋은 아이가 될 수 없다면, 조건적으로 나쁜 아이가 되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나쁜 아이가 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신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죄인으로 사는 것이 악마가 다스리는 세상에서 의인으로 사는 것보다 낫다...
악마가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죄를 짓는 해를 모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그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악하기 때문에 그는 악한 존재가 된다. 게다가 그에게는 안전함도, 구원받을 희망도 없다. 오직 죽음과 멸망만이 있을 뿐이다.

by Fairbairn

by 아비 | 2010/02/27 00:09 | 감상 및 정리 | 트랙백 | 덧글(0)

100124

같은 사람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서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낯선 사람을 발견하게 될 때

알 수 없이 밀려오는 배신감.


이제 너에게마저 내 얘기를 못한다는 생각을 하니 무섭다는 그 말이...



더 무섭게 느껴졌다.


자기연민적인 감정에 도취되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채 상대의 감정에 생채기를 내는 모습에 멍해졌다.



이 얼마나 연극적인가. 나는 한낱 관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네가 이해하라고,

약해서 그런거라고, 네가 이해하라고 생각해보지만,



너무 깊이 들어가서  인간으로서의 존경심마저 흔들릴 정도로 너무 깊이 보게 되었다.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환멸감.


쉽게 회의에 빠지고 인정머리없이 고지식하기만한 성격이 한몫하여 참기 힘든 분노가 치밀었다.



상대가 두려워하던 대로,

누군가 자신에게 실망할까봐 두렵다고 했던 그대로,

나는 상대의 전이에 휘말려 실망하고 나대로 상처받고 말았다.

또 상대는 인간을 너무 가까이 하면 실망만 하게 된다는 내 역동에 말려

그런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고 내 생각을 더욱 확고히 해주었다.




by 아비 | 2010/01/24 14:13 | 일상 | 트랙백 | 덧글(0)

관계의 벽을 생각할 때면 피투성이가 된 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막연히 '언젠가'라는 말로 적당히 핑계를 대며 빠져나가기엔 너무 늦은감이 있다.

이제는 정말 벽을 부숴야 한다는 것이 실감된다.

차라리 그렇게 손이 피투성이가 되서라도 부술 수 있다면 그게 더 쉬울 것 같다.




by 아비 | 2010/01/04 10:42 | 일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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